연말이 되면 동물병원 밖의 분위기와 안의 공기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거리에는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휴가와 모임 이야기를 나누지만, 동물병원은 늘 그렇듯 정상 운영을 이어갑니다.

특히 대형 동물병원이나 24시간 운영 동물병원일수록 연말은 쉬는 시기가 아니라 당직표가 더 촘촘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테크니션이 느끼는 피로는 업무량의 문제라기보다, 동물병원이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담이 기우는 연말 동물병원

연말이 모든 동물병원에서 성수기인 것은 아닙니다. 내원 수만 놓고 보면 오히려 평소와 비슷하거나 줄어드는 동물병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테크니션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업무의 밀도와 변수가 동시에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의 일정이 불규칙해지면서 예약 변경과 취소가 잦아지고, 연휴 전에 미리 진료를 받고자 하는 요청이 늘어납니다. 설명은 길어지고 판단은 미뤄지며, 보호자의 불안과 질문은 동물병원 내부로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 과정에서 테크니션은 진료 보조, 설명과 조율, 감정 노동까지 함께 담당하게 되며,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누적됩니다.

보상만큼 중요한 동물병원의 태도

연말 근무와 당직에 대해 별도의 보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말에 근무하고 당직을 서는 일은 일반 직장인과는 다른 리듬과 생활을 요구하는 일이며, 그 자체로 테크니션 및 동물병원 직원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테크니션이 느끼는 피로는 보상의 유무보다, 이 일이 동물병원 안에서 어떤 의미로 다뤄지고 있는지에 더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근무라도 동물병원이 필요로 하는 역할로 인식되는 경우와,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할 일정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체감되는 무게가 다릅니다. 연말 근무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수록 피로는 더 크게 쌓이는 반면, 동물병원이 이 부담을 인지하고 있다는 신호가 전달될수록 같은 상황에서도 테크니션이 느끼는 체감 근무환경은 달라집니다.

연말을 특별한 이벤트의 시기로 만들지 않더라도,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는 직원들에게 분명히 기억에 남습니다. 동물병원이 이 시간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는 이후의 팀 분위기와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말은 무언가를 새로 하기보다 기존의 운영 방식을 한 번 점검해보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